남들이 수려하고 희귀한 풍경들을 좇아 갈 때, 그의 발걸음은 늘 농촌의 골목이나 들녘으로 향했다. 벽에 걸어놓고 보기 좋은, 이른바 ‘이쁜’ 사진은 처음부터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전주의 사진가 김춘식(73)씨.
교직생활을 하던 40대에 카메라를 든 이래 그의 시선과 마음을 줄곧 붙들어온 것은 농촌, 농민.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은 골목길 혹은 변두리”라는 말마냥 이미 주류이거나 행세하고 있는 것들은 그의 마음에 앵겨들지 않았다.
첫 개인전인 ‘나그네’전(1989)으로부터 ‘농민 2002’전(2002), 그리고 세 번째 전시인 최근의 ‘농촌별곡’(1.8∼1.14, 전북예술회관)전에 이르기까지 그 항심(恒心)은 계속되고 있다.
그도 농촌 출신, 농민의 아들이다. 눈뜨면 보이는 게 평야였던 김제 죽산면이 그의 고향. 쌀가마 지고 똥지게 지고 일하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는다.
사진가로서 그가 마음 속에 담고 사는 말 중 하나는 ‘서 있는 농부는 앉아있는 신사보다 귀하다’는 영국 속담.

 

음화와 양화의 충돌…익숙한 현실 낯설게 바라보게
바지가랑이 훌훌 걷어올리고 바지게 멘 아재, 삼베저고리에 몸뻬 입고 고샅을 걸어가는 할매, 밀짚모자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른 아재, 밭고랑에 엎디어 일하는 아짐….
어느 농촌 들녘이든 고샅이든 나서면 금세 마주칠 것 같은 얼굴들이다. 헌데 아무렇지 않은 그 얼굴들이 문득 낯설게 보이는 건 왜일까.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음화 때문일 것이다. 음양이 뒤바뀐 네거티브의 세계. 일상 뒤에 감추어져 있던 이면처럼 음화는 낯설게, 기묘하게 다가온다. 그 혼란스러움은 익숙했던 양화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음화와 양화를 충돌시켜 낯설게 보기를 꾀한달까요.”
논둑에 앉아 쉴참에 담배 한 대중인 두 농부도 음화 속에선 달리 느껴진다. 쉴참의 평화로움이나 허허로움은 음화 속에선 증발되고 다른 정조가 들어찬다.
“예전 아날로그 작업 때는 암실작업에서 네거티브(음화) 상태의 필름을 포지티브(양화) 상태로 만들었는데 요즘 디지털작업에서는 음화라는 과정이 없어져버렸잖아요.”
그 변화에 주목한 그는 사라져버린 음화의 과정을 사진으로 되살려냈다. 현실의 다른 한쌍이라는 듯, 굳이 음화까지 드러내 보여준다. 음화와 양화의 상호조명. 그렇게 두 세계가 만나고 부딪히면서 의미의 겹이 늘어난다. 작가의 목소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빛의 세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빛의 세계 속에 어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됐다. 인화된 양화는 필연적으로 음화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진실은 현상한 필름에도 인화된 사진에도 있지 않았다. 진실은 음화와 양화, 두 세계에 동시에 걸쳐 있다.>
그의 사진은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의 한 대목을 떠올리기도 한다.

“자기 깃발(주관)을 가지고 찍어야지”…실험은 계속되고
같은 듯 다른 두 장의 사진이 만나서 한 벌을 이루는 작업방식이 처음은 아니다.
“‘농민 2002’전에서는 ‘짙고 옅고’ ‘크고 작고’의 방식으로 사진들을 병치시켰어요.”
같은 사진을 서로 다른 톤으로 밝기만을 조정해 두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내놓았다. 한 장은 정상적으로, 또 한 장은 매우 어둡게. 같은 인물, 같은 배경이지만 밝음과 어둠의 프레임으로 나눠 작업한 결과 이질성과 동질성이 부각됐다.
“우루과이라운드와 아이엠에프 이후 농민들의 모습, 농촌의 현실을 담아내기 위한 내 나름의 접근방식이었지요.”
인물에 드리워진 어둠은 그가 주관적으로 덧씌운 우울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그 자신의 발언 역시 두드러졌다.
그 충돌의 폭과 방식이 이번 전시에선 더욱 다양해졌다. 네가티브 사진과 포지티브 사진을 병치시켜 보여주는 방식은 같은 인물, 같은 사진뿐 아니라 서로 다른 인물, 다른 상황을 담은 사진들로도 나아간다. 전체 구도나 인물 동작 등이 유사한 사진들이 한 짝을 이루면서 이야기와 의미가 증폭된다.
찍혀진 사진을 오브제 삼아 재가공하는 작업. 절묘하기도 하고 때론 엉뚱하기도 한 일련의 작업들에서 확인되는 건 그의 실험정신과 놀이정신이다.
한 장의 사진을 놓고 부분적으로 짜깁기하듯 변화를 준 작품들도 있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흑백과 컬러,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충돌시키거나 또다른 사진을 끼워 넣거나. 고창 동호해변 부근의 철조망을 찍은 사진들도 그렇다. 단절이란 함의를 띠고 다가오는 철조망 위 하늘에 맑음 혹은 흐림의 상황을 떠올리는 다양한 구름사진을 띄우는 순간, 같은 풍경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들판에 한 농부가 서 있다. 그 농부가 웃는지 슬픈지, 마음 속 풍경이 어떠한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농부의 가슴 아래께 그는 푸른 하늘 흰구름 사진을 겹쳐 놓았다. 그가 그 농부에게 띄운 희망 한 조각이다.

 

과거와 현재가 담긴 농촌사진으로 농촌의 미래를 묻다
사진을 찍는 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하다.
“판덕이란 말이 있잖아요. 판의 덕. 마음을 얻어야죠. 내 욕심대로만 사진 찍으려 들면 되나요. 처음엔 그냥 놀죠. 막걸리도 사고 말도 붙이고, 카메라는 내려놓고. 한참 이야기하고 놀다보면 ‘저건 뭐여? 사진 찍을 줄 알아? 나도 한번 찍어봐’ 그런 순간이 오죠. 그 담에 또 그 마을에 가면 그 값싼 막걸리 한잔 산 걸 그 분들은 잊지 않아요. 돼지고기 달달볶아 김치찌개 끓이고 뭐라도 안주로 내놓고 꼭 그걸 갚으려 해요. 그 놈을 먹을 때 마음이 얼매나 시큰해요.”
그렇잖아도 시골 마을들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 시큰해질 일들 많다. 빈집, 혹은 폐가가 단적으로 상징하는 오늘의 농촌현실을 맞닥뜨릴 때 더욱 그렇다.
“자식들 다 떠나가고 혼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집, 살림살이들도 거의 그대로 남겨진 채 혼자 스러져가는 집들을 보면 시큰하죠.”
그 빈집들에서 그가 보는 것은 농촌의 막막한 미래다.
사진가로서 그는 ‘셔터의 시간 곧 찰나의 시간’을 살기도 하지만 ‘사진이 찍혀진 날로부터 쌓이는 시간’ 역시 산다. 물질이 삶의 기준이 되고 자본의 논리가 득세하는 시대에 자꾸 밀려나고 굴절되는 농촌의 모습. 그의 사진이 세월 속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농촌은? “사진을 찍으면서 내 자신에게 내내 묻는 물음이죠.”
과거와 현재가 담긴 그의 농촌사진은 바로 농촌의 미래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