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椿植 「나그네」를 중심으로 -


‘파인힐갤러리’ 초대로 김춘식의 사진전이 89년 5월 1일부터 30일까지 전시된다.

사진가 김춘식이 주제로 설정한 ‘한국인’ 시리즈의 첫 번째의 사진집 「나그네」가 출판된 것은 지난 87년 9월이었으나, 보다 미리 보여주었으면 좋을 것이라는…, 그리고 몇 분들의 추천에 의하여 후에 새삼 전시를 갖게 되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관심을 끌만한 것이었다는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

김춘식의 「나그네」작품은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다. 사람을 찍은 작품이 어찌 이 작가뿐인가! 그런데, 어찌하여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나그네」의 일련의 작품에는 일관된 하나의 표상(表象)이 부조(浮彫)처럼 떠오르는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가가 추구한 이미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을 다룬 작품들에는 서민생활의 애환이나 불우하고 고독한 소외계층의 생활의 단면에 어프로치하여 연민의 시각에서 접근한 휴머니틱한 작품을 위시하여, 더러는 「○○ 白人의 얼굴」등 한 시대를 주름잡고 스쳐간 인사들을 한 지역사회나 분야별로 선정하여 취재한 작품들이 있지만 김춘식이 다룬 사람은 그와는 다르다.

그의 작품집을 쭉 훑어보면 서있는 사람의 크로즈업된 화면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첫눈에 얼굴 표정으로 모아지고, 다음에 움직이는 상태의 전신 모습으로 옮기면서 전체적인 윤곽으로 인상지워진다. 그 인상이란 다름 아닌 물씬 풍기는 한국적인 정서다. 우리는 대대로 외침을 받으며 시련과 고난 속에 농경(農耕)으로 삶을 이어오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여 왔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삶 속에 베인 한국적인 정서가 결합되어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승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촌노(村老)에서 근엄한 선비의 풍모를, 혹은 고난 속에 살아오면서도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드리며 인고와 체념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못난 듯 우직(愚直)한 듯 보이는 모습에서 순박하고 선량한 심성을 보며, 더러는 눈물로 살아온 삶 속에 묻혀진 한(恨)과 그 한을 극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체념으로, 그것을 웃음으로 돌리려했던 해학이 번득이고…… 이러한 일련의 한국적인 정서가 토탈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는 위에서 든 얼굴과 모습에서 곧, 체위(體位)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에서 볼 수 있는 선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선은 강직한 직선이 아닌 한국미로 지적되어온 산등과 초가 지붕의 완만한 곡선의 흐름이 출렁이고 있으며, 이것이 해학적인 세계로 확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남다른 감성에서 찾아낸 그의 미감(美感)이다. 이러한 선에서 미와 해학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애써 그가 추구해온 작품세계로서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향설정이 그의 사진작업에 있어 적지않은 성공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할 때, 이러한 그의 인식과 시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것이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면 어떠한 관념을 바탕으로 이러한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고교(高校)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50대를 넘어선 나이, 40대 초에 사진을 시작하였다. 필자와는 같은 직장을 오가면서… 아마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에 입문하였다. 처음부터 열정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보고 ‘지나친 열성은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환멸을 느끼고 좌절하기 쉬우니 서둘지 말라’ 는 귀뜸에도 아랑곳없이 깊이 탐닉하기 시작하였고, 얼마 후에는 자기의 독자적인 세계를 선언하고 나섰다. (-싸롱사진이 아닌- 작자註). 그만큼 개성과 주관이 강한 사진가다.

이와 같은 그의 남다른 내적 충동과 집착은 그만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는 국문과에서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고된 고교교사 생활에 문학에의 정열을 묻어 둔 채 창작욕구를 안으로 달래어 오다가 마침내 사진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세계를 문자언어로 표현하는 문학에서, 평소에 매력을 느껴오던 사진을 영상언어로 대치하여 적극 표현에로 접근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아마추어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취미나 도락에서 뛰어넘어 출발부터가 사진을 매체로 자기세계를 전재(轉載)해 보겠다는 절실한 의지와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출발은 오랜 도사림이었기에 그 정렬은 불꽃처럼 타올랐고, 지치지 않고 작품활동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의 창작에의 이러한 내적욕구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다룬 한국적인 전통의식을 조명하려든 주제의식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이 두 가지는 문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사진에의 접근은 직장의 업무에 쫓겨 유보해 왔던 문학에서 전환이기에 처음부터 소시민적인 도락에서 벗어나 사진의 기본적인 기량을 익히면서 한편, 사진의 방향모색을 서둘렀다. 말하자면 빠른 시일 내에 자기 위상(位相)을 정립하고자 몸살을 앓았다.

그의 분석적인 두뇌는 사진사를 뒤적이며 고전으로부터 현대사진의 흐름을 살피며 맥을 짚어 보았다. 사진은 그 특성이 기록성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카메라의 넓혀진 보급과 대중화로 기록의 한계점을 보고 번민한다. 그리하여 문학에서 관심을 끌었던 작품들이 전통성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간파하고 사진작업의 방향을 한국적인 전통성을 조명해 보려고 모색한다.

결국은 전통적인 정서가 스며있는 삶의 숨결이며 흔적인 민속(民俗)과 무속(巫俗)을 소재로 하여 비애, 한(恨), 체념, 해학 등을 찾아보려고 한 문학적인 동기라는 것은 그와 대화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스스로 나그네가 되어 이 땅에서 대대로 삶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 곧, 나그네를 만나려 떠난다. 한 세상을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삶은 여정(旅程)이요, 이 여정을 가는 사람을 나그네로 본 것이다.

이러한 나그네를 찾아 그 속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포착해낸 사진작업의 일단이 그의 「나그네」사진집이다.

나그네란 날 저물면 아무데나 자고 마음내키는 대로 걷다가 사람 만나면 이야기하고 남의 집 사정까지 속속들이 기웃거리며 슬픔과 더러는 기쁨까지도 나누는 정겨움이 있고, 가다가 컬컬하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구름처럼 떠도는 낭만이, 요사이 넘쳐나는 관광객과는 사뭇 다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이하 생략)            朴木月의 「나그네」에서


이 시처럼 나그네에는 토속적인 정겨운 맛이 짙게 담겨 있다. 김춘식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의 나그네가 되어, 이승을 한과 체념으로 살아가면서 이를 아름다운 미로 승화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궤적(軌跡)을 찾아 방황한다. 이러한 그의 에스프리는 나그네가 되어 나그네를 만나는 황홀한 기쁨에 스스로를 도취하였다. 그는 시골길이며 장터며 고샅길을 헤매다 마침내 흙 속에 살아온 조상들의 떼묻은 표상에서 어렴풋이 애써 찾으려던 한국적 이미지를 찾아냈다. 이러한 발견은 바로 그의 날카로운 감성에 의한 그리고 문학적 바탕에서 얻어낸 터득이며 발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까스로 찾아낸 구원과 같은 그 실마리에 신명나게 매달렸다. 그러나 영상언어로서의 표현의 한계점 곧, 설명하기 어려운 벽에 부딪칠 때마다 몸부림치며 방황한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한 진통을 거듭한다. 이러한 시도가 그가 다음 『한국인 Ⅱ』에 걸고 있는 사진작업이다.

작품에 있어 새로운 변모를 해야한다는 것을 그의 계산된 수순(手順)이다. 그래야 만이 창작의 의미가 있고 사진을 했다는 흔적을 사진사에 남길 수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확고한 판단에 의한 의도적인 수순은 제대로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져 사진가로서 오늘의 모습으로 보여주는데 지름길이였다고 앞으로 거듭 이러한 방법으로 밀고 나갈 것을 믿으나 다만 인간을 찍되 전통적인 정서에 관심을 둔 나머지 삶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에의 관심’(휴먼 인터레스트)가 결여될 때 자칫 비슷한 사진의 나열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일이다.

기타 상황에 대한 빈틈없는 자기위주로 한 배려가 별로 크게 틀림이 없었기에 이러한 자기중심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하고 신봉할 때 말하자면 편협적인 지나친 과신은 자칫 도그마에 빠져 예상치 못하는 시행착오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이를 자제해 나갈 때, 사진가로서 무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날의 그의 작업의 발전적인 변신이 기대해진다.   - 사진 7 작품 수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