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춘식

사실성과 기록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적 신화의 재검토(5)
----------------------------------------------- 박주석 (명지대 교수, 사진평론가)

결국 ‘사진이 사실적이고 기록적이다’라고 하는 것은 절대 사진 자체가 가지는 본성일 수 없다. 주명덕이 1969년 주장하던 “사진의 본성은 기록성과 사실성에 있으므로...”라는 말은 그러므로 수정될 수밖에 없다. 사진은 1900년대가 요구하고 원하던 사실성과 기록성을 구현해주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기록적이며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동어반복의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일 뿐 본질적으로 사실석이고 기록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세상 어떤 조형방법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사실적이고 과학적일 수 있겠는가. 기독교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 한다면 불교, 유교도 그러하고 무속도 결국은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의 우열을 따지고 어느 것이 객관적인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매우 폭력적인 방식이다. 푸코의 ‘권력이론’의 핵심은 결국 이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푸코는 [병원의 탄생], [감옥의 탄생] 등의 저작에서 서양인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사실성, 객관성, 진실성, 도덕, 전통, 규율, 관습 등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배제시켜버리는 무서운 폭력적 성격이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진은 이러한 권력의 체계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사진가들은 한 장의 사진 옆에 또 한 장을 붙이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진 사이의 간극을 파고 들어가고자 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이라는 시스템 안에 무엇인가를 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시스템 안에 넣으며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제시켜버린다. 프레이밍(Framing)한다는 것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어떤 틀을 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그 대상에게 가하는 엄청난 폭력이 된다. 무슨 자격으로 대상의 의미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가. 현대 사진에서는 이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때문에 프레임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를 생각하고 사진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사진들을 찢어 붙이거나 이어서 찍는 것이다.
프레임과 프레임 바깥에 대한 고민은 사진의 역사에서 볼 때 사진의 탄생부터 이미 잉태하고 있던 문제이다. 모든 것을 한 점에 수렴해야 하는데 결코 모든 것을 수렴할 수 없고 수렴할 필요도 없는 것들에 대한 문제, 모든 것을 한 점으로 수렴해야 하면서도 수렴하지 못하는 사진이라는 시스템, 조형 발생 시스템의 한계이다. 그 한계를 명확히 알고 거기에서부터 사진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철학이 출발해야 한다.
사진의 역사와 미래를 잘 생각해 보면 프랑스와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에서 “상업화된 영화(industrial film)가 기존의 서술문학(narrative literature)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도전이 아니듯이 사진은 회화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도전이 아니라 14-5세기에 설계된 기나긴 시각프로그램의 한 단계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다. 리요타르가 영화와 사진을 근친관계로 보는 시각도 상당히 문제는 있다. 물론 기술의 발달과정 측면에서 볼 때 영화는 활동사진이므로 매우 가깝다고도 할 수 있으나 오늘날 정신적인 맥락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오늘날 영화가 발전하면서 문학계에서는 ‘문학의 죽음’이 최대 화두로 대두되면서 ‘문학의 위기이다. 영상매체가 너무 성하여 문학이 설자리가 없다, 기존의 소설 독자들이 영화로 이전했다. 때문에 현대는 영상의 시대이며 문학의 위기이다’라고 주장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현대는 문학하는 사람들의 위기일 뿐 문학의 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은 사진의 위기와 사진가의 위기이다. 리요타르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서술문학 즉 소설이 진행이 되다가 어느 날 영화라는 거대한 공룡이 출현하여 소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며,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소설이라는 시스템이 가는 한 단계라고 생각하였다. 즉 발생단계, 변이단계에 나타나는 변화로서 소설이 헐리우드 등의 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며 양자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소설문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도적 흐름의 양상이 변화하는 것이며 외부로부터의 도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진도 회화가 진행되어 오던 것에 대해 외부로부터의 도전이 아니라 서양회화가 가는 긴 프로그램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한 양상이다.
서양회화가 원근법을 확립시켰을 때부터 그리고 그 사고방식을 사실적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였을 때부터 이미 사진의 발명은 예고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회화의 발전, 변이과정 속에서 등장한 것이며 외부의 과학발전으로 인해 갑자기 등장하여 회화의 세계를 침범한 것은 아니다. 실제 사진 발명당시에는 대부분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물론 폴 들라로슈는 사진을 외부로부터의 도전으로 보아 “Today painting is dead - 현재 그림은 죽었다."라고 말하며 사진이 화가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요타르에 의하면 사진은 서양회화가 변해나가는 과정 속의 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진이 화학적 방법을 이용했다는 약간의 특징 때문에 사실성과 기록성이라는 것의 개념으로 모더니즘을 풍미했지만 이는 그 시대가 사진에 부여했던 일종의 짐이었을 뿐 사진 자체가 가지는 본성은 아니다. 사진 자체는 회화와 동일하다는 것이 리요타르의 주장이다.
필자는 그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은 인정한다. 요컨대 사진을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생산자적 입장에서 보면 화가와 사진가는 분명 다르다. 처음 사진을 발명한 사람도, 영화를 하는 사람도, 문학하는 사람도 다 다르다. 때문에 마치 경쟁관계나 대립관계 또는 상호보완관계 등으로 보일 수 있으나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사진이 갖는 사실성이란 결국은 엄청난 신화이며 사진이 담당하는 기록성도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회화가 담당하던 역할이었다.
예를 들어 제리코, 들라크루아, 데이비드 등 고전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사실의 기록이 많다. 데이비드의 그림 ‘나폴레옹3세의 대관식’을 보면 대관식 전날 단상을 스케치하고 당일에는 행사를 스케치한 후 그 다음날부터 열심히 색칠하여 두 달 후에나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그 사건의 현장을 기록하였다. 조지6세의 대관식에는 기자를 보내어 사진을 찍어 현장을 기록하였다. 양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결국 본질은 같다. 단지 방법이 달라지고 간편해지고 빨라졌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하는 일이 같다. 그렇다면 사진과 회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만 원래 회화가 갖고 있던 기록성과 같은 기능이었던 사진의 기록성에 사실성이라는 기능이 붙게 되면서 사진은 엄청난 권력으로 기능했었다는 것이 사진사에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 힘은 미국의 경우 1960년대 말-70년대 초 라이프가 망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 올림픽 전후를 계기로 사진의 사회적 역할은 사실상 막을 내린다.
거꾸로 뒤집어 사진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사실을 기록해야 하고 객관적인 증가가 되어야하고 정의의 편이 되어야 했던 것들은 모두 사진에겐 부담이었다. 이제 다른 매체가 이를 담당해주게 되었으므로 사진은 오히려 짐을 내려놓게 되어 자유롭게 뛰고 날 수가 있게 되었다. 회화가 그랬듯이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이다. 사실성과 기록성에 대한 신화는 반드시 깨어져야 한다. 이제는 어느 종류의 사진을 하든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끝)

--------------------------------------------------- 5회분 게재 06.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