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춘식

사실성과 기록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적 신화의 재검토(3)
------------------------------------------------- 박주석 (명지대 교수, 사진평론가)

르네상스기에 확립된 원근법에는 ‘대단히 합리적이다, 과학적이다’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원근법 자체가 매우 엄격한 기하학적 원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느 때나 어느 경우나 법칙이 동일하게 계속 반복되는데,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대상들을 같은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재현해낸다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다. 또한 카메라의 원리를 보면 필름면의 거리에 따라 같은 크기의 사람도 다르게 찍히게 되는데 이것이 기하학적 비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다. 때문에 카메라는 매우 과학적인 매체라고 평가받는다.
사진발명 이전에는 카메라가 이용되더라도 비쳐진 이미지를 사람의 손으로 그려서 이미지를 재현해 내는 방식이었다. 초기 르네상스기에 카메라 옵스쿠라는 사람의 크기보다 더 큰 것도 있었다. 사람이 카메라 옵스쿠라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에 비쳐진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던 것이 점차 작아져 17세기에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쿠라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오늘날 35mm 카메라의 원형이 된다. 그럼에도 이미지는 여전히 사람이 손수 그려야 했다. 비록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 해도 최종적으로 이미지가 눈에 보이도록 고정시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의 손이었다. 때문에 카메라 옵스쿠라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고정시켜 만들어내는 상(像)에 대해 ‘사실적이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 둘 것은 ‘기록성’은 이때에 이미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성’이라는 개념은 이 시대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1830년대 들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광화학적 방법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기계는 거짓 없이 완벽히 대상을 찍어낸다는 기계적 사실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결국 20세기 들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스트레이트사진 이후 기계적 사실성을 신봉하는 형식주의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사진은 과학적이다’라는 신화는 결국 기계에 의한 이미지의 고정이라는 측면에서 만들어진 신화이다.
사진에 관한 또 하나의 신화로 ‘사진은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있다. 일점원근법이 확립되던 당시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름대로의 합리성에 카메라는 잘 부합되었다. 요즈음 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동양적인 합리성과 서양의 합리성-reasonable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서양에서의 합리성이란 전통과 관습, 전체적 또는 사회적 인식이 기본적으로 토대가 되어야만 어떤 행동에 대해서 합리적이라는 말을 붙인다. 카메라 옵스쿠라가 만들어진 일점원근법의 조형방식 자체가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들이 가진 전통적 사고방식인 기독교 사고방식과 잘 맞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대단히 기독교적이다. 기독교의 합리성과 사진의 원리가 잘 맞아 들어갔다는 이야기이다. 르네상스기에 합리적이라는 것은 기독교적 체계를 따르는 것으로 그 체계를 벗어나는 것은 가차없이 제거되었으며 그 틀밖에 있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이란 결국 이 틀에서 벗어낫기 때문에 가해지는 형벌이었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합리적이라는 것은 세상이 살아야 되는 규칙대로 움직여주고 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태까지이며 이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합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므로 서양인들의 합리성이란 모든 것이 한 점을 수렴된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들은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 (계속)

--------------------------------------------------- 3회분 게재 06. 06.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