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 0

[2009-03-25]

창조적 사진 10 - 사진에서 소재 찾기는 결국 ...

창조적 사진으로 가는 길- 10
---- 사진에서 소재 찾기는 결국 ... -------------  한 정 식 (중앙대, 현 대구예대 석좌교수)

아) 어떤 소재를 찍을 것인가

  지금까지는 주제에 주안점을 두고 설명을 해 보았다. 그러나 '무엇을 찍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사실상 어떤 피사체(소재, 대상)를 찍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들리기 쉽다.
  실제로 어떤 대상(피사체, 소재)을 찍을까부터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어쩌면, 주제다 뭐다 하기 전에 이 소재 찾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사진으로 접근하는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재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한 한 개 도구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설명할 내용도 많지가 않아 주제부터 자세히 설명을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소재(대상, 피사체)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 두고자 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거기에 알맞은 소재를 찾아야 한다. 이 역시 말이 쉽지 어떤 것이 내 주제에 알맞은 소재인지를 알아내기도 실은 어렵다. 주제에 알맞은 것은 그만 두고, 단순히 소재를 찾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하나 설명해 보기로 하자.

  소재를 찾으려면 우선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많이 다녀야 새로운 소재를 찾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새로운 소재라야 한다. 영상의 홍수 시대에 흔한 소재 가지고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다닌다고 해서 새로운 소재가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심하게 말해서 새로운 소재가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 주제나 마찬가지로, 그 많은 사진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 찍지 않고 남겨 놓은 소재가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새롭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눈을 끌 수 있는 소재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남의 눈을 끌어야 내 사진 앞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다 해도, 남의 눈을 끄는 소재라는 것도 어떤 것이라야 할지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이 또 아직 남아 있을까 하는 것 역시 문제이다.

  결국 우리가 찾아내어야 할 소재는 새로운 것도 좋고 남의 눈을 끄는 것도 좋지만, 주제에 알맞은 소재, 그 소재가 아니면 그 주제가 살 수 없을 뻔했다 싶은 소재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려면 역시 많이 다녀야 한다. 어떤 것이 가장 알맞은 소재인지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사진을 발로 찍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주제를 살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소재를 찾으려면 많이 다니며 찾는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 소재인지를 미리 생각해 놓고 그런 것을 찾아다닐 수도 있지만, 다니다가 발견되는 대로 찍어도 된다. 단, 덮어놓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알맞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좋다. 이런 주제를 위한 소재는 이런 곳으로 가면 찾을 수 있겠다 하는 그런 예측과 감각으로 나서는 것이다. 단풍은 어디가 좋고, 왜가리는 어디가 좋다고 몰려가는 것도 결국은 이런 방식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주제에 알맞은 소재 찾기가 아니라, 밤낮 보던 소재 또 찾아다니는 일에 그치는 것이어서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다니면서 눈에 띄면 일단 찍어 놓아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것이다, 하는 것이 나온다.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알 수 있다. 찍을 때부터 이것은 물건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 경험을 대개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 경우 빨리 현상과 인화를 해 보고 싶어 마음이 급해진다. 그 예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가장 알맞은 소재는 열심히 다니며 찍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고 찾아진다.
  이것이 알맞은 소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고, 찍을까 말까 싶을 때에는 일단 찍어 놓아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나 꽃 따위는 좀 낫지만 움직이는 물체를 찍을 때 이리저리 생각하고 벼르고 하다가는 놓치고 만다.
  찍어 놓았다가 안 쓰고 버리기는 쉬워도, 놓친 것을 다시 찍을 수는 없다. 바위나 꽃이라 해도 당시의 빛은 쉬지 않고 변한다. 그 바위나 꽃에 대한 작가의 감정도 상황에 따라 바뀐다. 마음이나 빛이 바뀌면 좀 전에 보이던 것도 안 보이게 된다. 조금 있다가 찍어야지 하고 다른 것을 찍다가 다시 와 보면 상황(빛이나 감정)이 바뀌어 아까 보아 두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변하기 전에 찍어 두어야 한다. 이렇게 이거다 싶은 소재를 그때그때 찍어 놓았다가 그 중에서 주제에 가장 알맞은 소재 하나(실제로는 한 장의 사진)만 남긴 뒤 나머지를 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은 주제에 알맞은 소재를 찾기보다 그냥 좋은 소재를 찾아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다. 로마로 통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소재를 찾아서 그로부터 주제를 찾아내든, 주제에 알맞은 소재부터 찾든 좋은 사진만 찍으면 된다. 소재부터 찾아 찍어도 그 길로 갈 수 있다. 예술에는 왕도가 따로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에도 주의할 것이 있다. 한 가지 소재를 골라 그것을 집중적으로 찍으라는 것이다.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 어느 한 가지 소재를 정한 뒤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찍어야 한다. 다른 것에는 당분간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 한 가지 소재를 정하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기호에 따르는 문제이다. 어떤 소재를 찍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내 눈에 자주 띄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을 찍을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흥미를 느끼고 있는 사물을 찍는 것이 좋다. 여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여인을, 사회 현상에 갈등을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은 사회 현상에 카메라를 향하는 것이다.

  사진 찍으러 나가 보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는데 내 눈에는 잘 띄는 사물이 있다. 사람마다 그것이 달라서 재미있거니와, 필자가 초보자였을 때 개가 유난히 눈에 잘 띄었다. 그래서 개가 내 사진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까, 개만 보면 동료들이 '어이 한 선생, 저기 강아지 있어' 하고 일깨워 주기도 했다. 결국 강아지와 내 아들이 노는 것을 찍어 '동아 사진 콘테스트'에 가작으로 입상하기도 했고, '국전'('한사전'이 당시에는 '국전'에 속해 있었다)에도 입선했다. 그 다음에는 나무를 찍기 시작했는데, 이 나무를 필자는 아직도 찍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내 관심을 끄는 소재인 것이다.

  한 가지 주의 할 것은, 눈에 띄는 소재를 찾으라고 해서 신기한 것, 이상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 띄는 것을 찍으라는 것은 내 관심을 끄는 것, 공연히 찍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찍으라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아마추어 작가들과 촬영을 나가 보면 '야, 저것 재미있다, 저게 뭐지? 저거 한번 찍고 갑시다' 하며 차를 내린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시시로 바뀌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대상이 시시로 바뀐다는 것은 사진의 내용에 일정한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사진은 한 장으로 끝날 수밖에 없고, 그런 한 장짜리 사진만으로는 작가의 일정한 생각이나 느낌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사진은 단순 취미, 도락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창조적인 사진으로 이를 수가 없다. 지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소재를 권하는 것이 그래서이다.

  그리고 한 번 찍어보고 끝이 나는 소재로는 연습이나 훈련이 되지 않는다. 신기한 것, 이상한 것이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그런 것은 지속적으로 찍어 나갈 수가 없다. 그뿐 아니라, 신기하고 이상한 것은 한두 번 볼 때뿐이지, 몇 번 보면 다시는 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있는 사진이란 여러 번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두고 볼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사진을 가리킨다. 필자가 말하는 '창조적 사진'이란 이러한 사진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사진이 그렇게 쉽게 찍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꾸준히 지속적으로 찍어나가야 한다. 그런 후에라야 창조적 사진은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 소재를 집중적으로 찍다 보면 얼마 안 가서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비슷한 사진만 계속 찍히는 탓이다. 그 때부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오게 되고 그에 따라 고민이 시작된다.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고, 늘 비슷한 것만 찍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슬럼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고민이 안 될 수가 없다. 자칫하면 이것으로 그만 사진에 싫증을 느껴 중도에 포기하거나, 상당 기간 슬럼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비슷한 사진이라도 계속해서 찍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찍다 보면 어느 날 깨달음처럼 문득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 역도 선수가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할까 생각해 보라.  늘지 않는 기록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결심으로 덤벼들어 문득 새로운 무게를 들게 되면 다음부터 그 무게는 쉽게 들게 된다. 그리고 또 새 기록을 위해 피나는 연습을 다시 시작한다.

  사진도 이와 같다. 새로운 사진을 찍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끈기 있는 촬영뿐이다. 새로운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안 보여도 쉬지 말고 찍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사진은 찍힌다.
  자기 사진이 같은 사진의 되풀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부터가 발전의 한 징조인 것이다. 그런 것이 보이고 느껴지면 다음에는 꾸준한 노력만이 요구된다. 이런 노력은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새로운 경지가 열리고, 사진은 한 단계 진전한다. 성공한 사람은 모두 그렇게 극복해서 이긴 사람들이다.

  처음 배울 때도 그렇지만, 사진이 진전이 없을 때, 이렇게 한 가지 사물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좋다. 이것저것으로 관심이 흩어지면 시간과 정력과 필름만 낭비한다. 시간과 돈을 절약해 가면서 하루라도 빨리 창조적인 사진을 찍으려면 이렇게 한 가지 소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길이 제일 빠른 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소재는 아무것이나 다 된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소재가 될 수 없는 것은 없다.
  예술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더럽고 지저분한 것은 피하려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고상한 것만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 지저분한 것도 소재가 될 수 있고, 더럽고 추한 것도, 음란한 것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하는 그 주제가 그들 소재를 결정지어 준다.

  남들이 뭐라 할까봐, 또는 자기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창피해서 피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남의 눈이 두렵거나, 자기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예술은 솔직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야 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나로부터도 자유로울 때 예술은 꽃을 피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진의 소재이다. 소재는 아무것이나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찍으라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썼듯이 주제에 가장 알맞은 소재를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능하면 새롭고 남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가 좋다.
  흥미를 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같은 값이면 새로워야 하고 흥미로워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있다. 소재 찾기가 어려운 것이 이래서이다.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