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춘식

창조적 사진으로 가는 길- 9
----- 사진에서 개성의 드러남 -------------------- 한 정 식 (중앙대, 현 대구예대 석좌교수)

사) 그러면 개성은 어떻게 해야 드러낼 수 있을까?

그러나 개성은 드러낸다고 하기보다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개성을 억지로 드러내려고 노력해서 나타난다고 하기보다 앞의 김 기찬 씨의 경우처럼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도 그렇다. 내 개성을 생각해서 거기에 맞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터져나오는 게 우리들의 말이다. 그렇게 터져 나온 말에 성격이 드러나지, 성격에 맞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처럼 사진을 찍다 보면 저절로 개성이 드러나지 개성을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자기 멋대로 찍으라'고 한 것이 그래서이다. 그래야 거기 개성이 드러나지, 이리저리 남의 눈치 보고, 남의 눈에 맞추다 보면 오히려 개성이 죽어버린다.
물론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궁리도 하기는 해야 한다. 이를테면 렌즈를 택해도 광각을 쓸 것인가 망원을 쓸 것인가 하는 것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야 한다. 광각과 망원은 단순히 범위를 넓게 잡고, 먼 것을 당겨 찍을 때에만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느낌이 전혀 다른 렌즈이다. 자기 체질, 자기 개성에 따라 거기에 맞는 렌즈를 골라 써야 한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각각의 렌즈가 주는 과장되고 왜곡된 영상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촬영 의도, 표현 목적에 따라서는 때로 그런 과장된 시각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외형적 영상미에 빠지다 보면 정작 잡아내어야 할 내용을 잃어버리기 쉽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렌즈의 맛을 알기 위해서도 이것저것 써 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진을 해 본 뒤 특히 자기 마음에 드는 렌즈가 있다면 그 렌즈를 주로 써 볼 필요는 있다. 그러다가 자기 사진 세계가 어느 정도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 렌즈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개성에 따라 렌즈를 선택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렌즈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카메라도 각자의 사진 세계를 고려해서 골라야 한다.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다큐멘터리 쪽을 택한다면 뷰파인더식 카메라, 라이카를 기준으로 말해서 M-type 카메라가 좋고, 자연을 대상으로 감각적인 사진을 하려면 일안반사식 카메라, 라이카를 기준으로 말해서 R-type 카메라를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대상으로 접근할 때에도 가까이 들어가서 찍어야 할지, 조금 떨어져 간격을 두고 찍어야 할지를 택해야 한다. 자기 사진에 알맞은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위기에 따라 접근 거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연을 관조한다면 조금 떨어진 거리를 유지한다든가, 자연을 파고들기 위해서 보다 가까이 접근한다든가 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찍을 때에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려면 가까이 접근해야 하겠고, 분위기를 살리려면 한 발 떨어져 주변 상황까지 집어넣어야 할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사진에 따라 거리, 앵글, 톤 등을 정하다 보면 거기에 저절로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거꾸로,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거리나 앵글, 톤 등을 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도 한 예일 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실제에 당해서는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찍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찍어 놓고 사후에 검토할 때 이런 저런 면을 고려해 가면서 다음 번 촬영에 임해야 한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개성이 앵글이나 톤 등 외형적인 것으로보다는 우선 각자가 다루는 주제와 소재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선택하는 주제와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찍어도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측면이 눈에 먼저 띌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그 반대일 것이다. 긍정 부정만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은 사람마다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이 곧 개성으로, 우선 각자의 인생관 자연관에 따라, 아니 아주 쉽게 말해서 내 성격에 맞는 주제와 소재, 내 관심을 끄는 주제와 소재를 찾으면 개성은 물론이요 작품으로서의 사진이 그 모습을 확실하게 갖추게 된다.
그 때 비로소 여러분은 프로, 아마를 따질 것 없이 한 사람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