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춘식

창조적 사진으로 가는 길- 8
---- 나만의 세상보기, 개성의 중요성 ----------- 한 정 식 (중앙대, 현 대구예대 석좌교수)

바) 개성의 중요성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술은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화할 뿐이다. 패러다임(paradigm),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표현 방법의 변화가 예술의 역사로, 이 세상에 알려진 수많은 걸작, 명작들은 거의 다 주제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관점이나 접근 방법이 새롭거나 개성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이 새로운 접근 방법, 새로운 해석이다. 세상이나 우리의 삶은 하나이지만 그 세상이나 삶이 다양한 작품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람마다 주관적 해석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접근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제도 좋지만 각자의 패러다임에 따라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때 더 현실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 생산된다. 이처럼 이미 여러 번 다루어진 주제라도 새로운 면으로 다시 접근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것, 이것이 많은 걸작들의 실체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개성이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 생각으로 우리의 삶을 판단해서 그 결론을 사진으로 찍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만일 누구나 똑같은 사진, 똑같은 작품을 늘 보여 준다면 그런 작품을 보러 전시장을 찾고, 작품을 사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느 하나만 보면 나머지는 볼 필요가 없으니까. 여담이지만, '국제 사진 살롱'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전은 한두 번만 가 보면 더 가 볼 필요가 없어진다. 매번 같거나 비슷한 사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같은 것 또 보러 가는 것은 시간 보내기 어려워 걱정인 사람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서로 다르니까 보러 가는 것이고, 남과 다르니까 그 사람이나 그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머리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는데 이것이 교육의 맹점이기도 하다. 배운 대로 보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문이나 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고 생각하는 수가 많다. 요즈음 몇몇 중요 일간지에 온갖 압력을 가하려 드는 것도 그런 언론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쪽으로 기우는 것을 어떻게든지 막아 보겠다는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처럼 우리들은 남의 머리와 남의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창작하는 사람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피해야 한다. 남의 말, 남의 생각 따라 찍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내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찍어야 내 사진이지, 남의 생각, 남의 말 따라 찍은 것은 비록 내가 찍었어도 그것은 남의 사진이다. 개성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소위 명작, 걸작이라고 알려진 많은 작품들은 '새롭다'보다는 '개성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주제는 물론이요, 접근 방법도 이미 수많은 사진가들에 의해 개발되고 실험되어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주제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제 멋대로 하라'고 한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면 절대로 안 된다. 사회적 양심이나 도덕조차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도덕이나 사회적 양심이라는 것은 모두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지 내가 세운 기준이 아닐 뿐 아니라, 내게는 맞지 않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그런 것들에 도전하여 과감하게 나를 드러내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때로 지나치는 수도 있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과감하게 자기를 드러내려면 어쩔 수 없이 부딪칠 각오도 해야 한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개성이라는 것이다.

개성에 따라 찍히는 것이 사진이다. 의도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려 해도 한두 장 정도는 모를까, 나머지 사진에서는 역시 그 작가의 인간성이나 성격 등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김 기찬 씨의 그 유명한 '골목 안 풍경'은 서울 토박이로서의 작가의 향수를 노래한 사진인데 이들 사진은 퍽 따뜻하다. 이것은 고향을 찍어서가 아니다. 미리 따뜻하게 찍겠다고 마음먹고 그렇게 찍은 것도 아니다. 그의 사람됨이 따뜻해서 사진이 따뜻해진 것이다. 이것이 개성이다. 그래서 작가가 곧 작품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작가 이전에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먼저 되라는 말은 긍정적인 인간, 건설적 인간형을 지향해서 한 말이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인간, 파괴적인 인격의 소유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 역시 자기를 속이려 들지 말고 자기 감정에 충실하게 부정적인 인생관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반드시 따뜻한 사진만이 좋은 사진이요, 긍정적인 사진만이 예술 작품은 아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함께 흐르는 곳이 이 세상이다. 더러운 물도 어디엔가는 흘러야 한다. 그뿐 아니라, 부정적인 시각 역시 결국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한 한 개 수단인 것이다. 부정을 위한 부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부정적 시각도 결국은 긍정적인 생각의 역설적 표현 방법인 것이다.

이렇게 각자 자기 개성 따라 작업을 할 때 예술의 다양함이 드러나고, 그 다양함을 통해 예술을 통한 '세상 읽기'(예술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개성이 중요한 것이 그래서이다.
그러면 개성은 어떻게 해야 드러나는가, 또는 드러낼 수 있는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