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춘식

창조적 사진으로 가는 길 6
----- 사진 주제의 필요성 -------------------- 한 정 식 (중앙대, 현 대구예대 석좌교수)

라) 주제는 왜 필요한가.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주제다 뭐다 하는 것은 '엮음사진' 말하자면 여러 장으로 자기 생각을 나타내는 사진의 경우이지 한 장짜리 단사진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사진 인식이다. 사진이란 말이라고 이 글의 첫머리에 써 놓았거니와 실은 사진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다 '말'이다. 말만 말이 아니라 '표현된 모든 것'은 다 말인 것이다. 따라서 사진이 말이라는 인식만 확실하다면 답은 간단히 나온다.

생각해 보라, 말이 단어 하나로 이루어지는 수가 있는가. 감탄의 경우 그저 '아!' 한 마디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앞뒤 사정을 다 안 뒤에야 터져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알아야 그 감탄사가 이해된다. 사진 한 장만 불쑥 내어놓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한 마디 낱말로는 그 뜻을 알 수 있을 뿐 이 낱말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거나,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라든가 몇 개의 낱말이 덧붙음으로써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러나지 한 개 낱말로는 그 뜻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벽에 걸어 놓은 한 장 그림의 아름다움처럼 사진도 한 장으로 아름다움이 나타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장짜리 그림도 알고 보면 어떤 화가의 일관된 생각이나 느낌의 한 부분으로 거기 걸려 있는 것이지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의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우리가 '피카소'나 '마티스' 또는 '이 중섭' 하면 그 사람의 그림이 일단 머리에 떠오르고 어떤 그림을 보면 이건 이 중섭이다, 피카소다 하고 금방 알아본다. '이발소 그림'이나 극장 간판이 아닌 이상, 이런 일관성 속에서의 한 장이지 전혀 엉뚱한 그림들의 파편이 아닌 것이다.

한 장짜리 사진이라도 발표할 때마다 공통된 감정이나 사상이 드러나면 된다. 그게 바로 주제이니까. 까르띠에-브레송이 언제나 한 장짜리 사진으로 발표를 했지만, 그의 사진에는 일관된 그의 인생관, 그의 사진 철학이 들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는 것이지 발표될 때마다 오락가락하였다면 그를 전문적인 사진가로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자리에서 다루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처음에는 이 사회가 끔찍한 지옥이라고 했다가 잠시 뒤에 이 세상 같은 낙원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인가. 인생관이 갑자기 바뀌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말할 때마다 오락가락한다면 그건 정신질환자이지 정상인은 아니다. 한 장짜리라도 작가의 일관된 인생관, 자연관 등이 들어 있어야 예술이 될 수 있고, 예술가로 설 수 있다. 그런 것이 없을 때 그 사진은 그저 한가로운 도락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그런 사진은 작품이나 예술의 범주에 들 수가 없고 따라서 이런 자리에서 논하지도 않는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일관된 주제라야 한다고 해서 한 가지 주제만을 찾아 찍으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는 살아가면서 생각나는 것이나 느껴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내가 꼭 찍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두어 가지 주제를 늘 머리 속에 넣고 다닐 것을 권한다. 한 가지만 찍으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것 하나 해결해 놓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일이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작업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한 가지보다 두어 가지 주제를 머리 속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그 주제에 알맞은 것을 찾아 찍는 것이 찍기에도 재미가 있다. 입에 맞는 반찬이 몇 가지는 있어야 밥맛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찍은 후 주제별로 분리해서 정리를 해 두었다가 발표를 하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