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박평종 0
[2009-04-13]
제목
현대예술과 한국사진 - 현대예술의 확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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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담론의 그늘(1)
현대예술과 한국사진
                                                    박 평 종((미학/사진비평. 명지대 한국사진사연구소)

한국의 시각예술 분야에서 최근 눈에 띄게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모습 중의 하나는 사진의 확장이다. 이미 1980~90년대부터 사진은 조금씩 현대예술의 장(場) 속으로 진입할 채비를 하고 있었고, 2000년대에 이르면 징후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그 자체로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을 낳게 한 내적 요인은 무엇인지, 사진과 미술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등의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은 아직 멀리 있는 듯하다. 작가들은 작가들대로, 비평가나 미술사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갖고 있을 테지만 그것은 개인들의 불확실한 견해 차원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난해하고 일정한 규칙 없이 여러 가지의 다양한 작업들이 난립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현대사진의 계보와 유형을 정리하여 의미의 구슬을 꿰맞추고자 하는 비평적 담화가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비단 한국사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라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새로운 작업에 대한 기민한 의미부여나 저널리즘 차원의 신속한 비평은 많지만 산발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현대예술의 확장성

개념예술과 팝, 복합매체, 설치 등 현대예술의 성격을 말해주는 큰 흐름들 속에서 사진은 하나의 하위 장르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예술의 몸체가 비대해졌다는 뜻이다. 모더니즘 예술 이후 꾸준히 장을 넓혀 온 역사에 비추어보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며, 이러한 확장성은 고갈되지 않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현대예술의 흐름을 이끌어낸 내적 추동력 속에서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기존 예술의 형식과 규칙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과정이 모더니즘 예술의 역사였던 만큼 도발과 전복을 에너지로 삼았던 이 기발한 예술은 애초부터 예술이라 할 수 없는 것마저도 예술로 둔갑시킬 수 있는 연금술사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하겠다. 마치 레스타니(Pierre Restany)가 누보 레알리즘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예술적 세례’라고 표현했듯이 혹은 혹자들이 뒤샹을 두고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언급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거나, 예술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은 현대예술의 논리 속에서 더 이상 낯설거나 기이하지 않다.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의 장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단토의 다원주의적 예술 개념 또한 그런 점에서 특별히 놀랄만한 생각은 아니다.

현대예술의 확장성에 대한 문제를 염두에 두자면 뒤샹을 언급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더니즘 예술을 자기비판과 순수성의 문제로 집약시켜 설명하려 했던 그린버그나 예술에 대한 청교도적 순결을 지켜내고자 했던 추상표현주의는 뒤샹의 확장적 예술과의 경쟁에서 결국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서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예술은 축소된 모더니즘이자 역사로서의 모더니즘이 된다. 한편 현대예술의 복합적 성격을 말해주는 미니멀리즘이나 포스트 미니멀리즘, 팝이나 네오 팝, 개념예술, 행위예술, 오브제와 설치, 비디오와 뉴미디어 등과 같은 예술은 뒤샹의 생각에 크게 빚지고 있다. 오브제와 설치는 말할 것도 없고 초기 미니멀리즘을 이끌었던 도날드 주드, 팝의 총아 앤디 워홀, 개념예술의 주창자 조셉 코수트, 행위와 비디오의 선구자 존 케이지와 백남준 등은 모두 뒤샹의 전복적인 예술개념으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뒤샹의 예술개념을 지배하는 생각은 반(反)예술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무한한 부정을 통한 순수한 긍정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부정은 특정 대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부정 자체를 내적 에너지로 삼는 순수한 부정, 요컨대 부정을 통해 얻어진 새로움 앞에 만족하여 멈추는 부정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끝없이 부정해나가는 운동으로서의 부정이었다. 부정의 행위 속에서 부정의 정신을 잃지 않는 혹은 부정성을 고갈시키지 않는 부정, 그것이 반(反)예술로서의 다다정신이다. 그리하여 부정은 무한을 향한 움직임이 된다. 결국 모든 것이 부정되어 더 이상 부정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도 남아있는 부정성이란 블랑쇼가 바타이유를 인용하면서 사용하는 표현처럼 ‘용도 없는 부정성’에 다름 아니다. 그 때의 부정은 더 이상 부정할 것이 없는 부정성이 긍정되는 상태와도 같다. 그것은 또한 부정할 무엇이 없기에 긍정밖에 할 수 없는 부정성, 요컨대 가장 순수한 긍정의 형태이기도 하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그러한 부정성이란 긍정밖에 할 수 없는 부정성이자 결국은 아무 것도 긍정하지 않는 긍정성이다. 뒤샹의 부정성은 이처럼 가능한 모든 것을 부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으로 결국 덤덤한 긍정의 체험으로 남게 되는 순수한 부정성이다.

20세기까지 미술사를 거쳐 갔던 무수한 예술가들 중 가장 부정의 정신을 극단까지 밀고나갔다고 평가받는 이 무정부주의적 예술가에게 예술은 결국 순수한 긍정의 대상으로 남았다. 그것이 무한히 확장된 예술의 새로운 질서가 된다. 실제로 뒤샹은 다양한 형태로 기존 예술에 대한 비판과 부정을 솔직하고 힘있게 실행해 옮겼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망막 중심의 회화 비판이나 작가와 관객의 일방적 관계 및 시각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예술작품을 만드는 자는 관객이라고 언급하는 경우에서 볼 수 있듯 그의 부정성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한편 레디메이드의 선택은 취향의 부재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며, 나아가 예술가가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가 작가를 선택한다는 그의 언급은 미학의 근본 문제를 취미판단의 울타리 속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도발적인 흐름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도 텅빈 캔버스를 예술작품으로 제시한 적이 없었다. 라우젠버그가 ‘화이트 페인팅’이라고 이름붙인 흰 색 모노크롬 회화를 그렸음에 비추어 텅빈 흰 캔버스는 레디메이드로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수세기 동안 회화의 존재를 지탱해 온 최소한의 조건에 대한 존중, 그것이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긍정성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기존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모조리 부정해나가면서도 예술 자체는 긍정하는 기이한 발상으로 인해 예술의 지평은 무한히 넓어졌다. 그래서 뒤샹 이후의 예술은 형상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의 문제로 전환되었다는 생각도 나오고, 예술은 이제 취미판단의 문제를 벗어나 규정의 문제로 진입하였다는 유명론의 패러다임도 생겨났다. 또한 리오타르가 넌지시 암시하듯 뒤샹의 작품들 곳곳에 스며있는 치밀한 기계적 정밀함은 예술을 감수성의 표현으로 축소시켜 온 서양예술의 편향성으로부터 예술이 본래 지니고 있던 수공업적 혹은 장인적 테크네의 가치를 복원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개념과 오브제, 설치, 행위, 뉴미디어 등 수많은 이질적 요소들을 받아들여 온 현대예술의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진은 뒤늦게 현대예술의 장 속으로 진입한 경우에 속한다. 제도적으로도 그렇고 예술담론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사진을 가장 폭넓게 활용했던 개념 예술가들에게 사진은 그 자체로서 자율성을 지니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념을 드러내기 위한 간편한 도구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퍼포먼스, 이벤트, 해프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행위예술의 경우나 로잘린 크라우스가 조각 영역의 확장으로 파악했던 대지예술의 경우에도 사진은 처음에는 기록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현대예술의 복합적인 전개 양상 속에서 사진의 도구적 활용이 두드러졌던 경우는 이처럼 개념예술과 팝, 행위예술, 대지예술 등 제한된 몇 가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비록 사진을 활용하는 작가들은 많아졌지만 그것이 사진의 예술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편 이 시기의 예술은 다원화된 가치들 속에서 혹은 중심적인 가치의 부재 속에서 표류와 혼란을 거듭했다. 예술작품의 가치를 미술사의 전망 속에서 찾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철학에 기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단토는 예술이 철학에 예속되어가는 징후로 파악하기도 했다. 예술은 테크네(Techne)나 아트(Art)가 아니라 형이상학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시기를 중심으로 펼쳐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거센 논의는 사상사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시대의 문화 현상 전체를 진단하고 전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예술 전반의 문제에까지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들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논의에 직간접적으로 걸쳐있었던 현대철학자들의 주요 개념들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그것이 다시 한번 현대예술의, 더욱 정확히는 현대예술에 관한 논의의 철학 종속성을 부추긴다. 영미권의 논의에 민감했던 한국의 90년대는 거기에서 돌출되어 나온 다양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지적 풍토에서 성장한 젊은 작가들은 작업의 화두를 거기에서 끌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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